처음으로 묵동성당 화보 축하의 글 30년 발자취 활동 단체 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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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요한 초대신부의 부임과 사제관 신축

천요한(Smyth John)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아일랜드인으로 1962년 12월 21일 사제서품 후 바로 한국에 입국하여 돈암동 본부에서 1년간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춘천교구 묵호성당 보좌, 평창 성당주임, 홍천 성당보좌를 거쳐 1975년 9월 21일에 묵동 본당에 부임하였다.
천신부가 부임했을 때는 본당이라고 해야 강당 한 채뿐. 사제관과 사무실이 없는 상태여서 제일 시급한 것이 사제관과 사무실의 신축이었다.

부임하자마 강당 건물 2층에 사제관(37평)과 부대 건물 (12평)을 총공사비 6,001,000원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사무실 및 주변 건물). 당시 천 신부는 돈암동 성 골롬반 지부에서 출퇴근을 하였으며, 착공 80일 만인 12월 15일 사제관의 완공으로 상주하여 본격적인 성당 업무에 들어갔다.




75 년당시 성당
12월 15일 사제관의 준공후
성모회 설립과 전교회장 임명

‘75년 11월 15일 본당 여교우들의 친목과 신심 생활 향상을 위한 ‘성모회’(회장, 서 모니카)가 회원 15명으로 구성되어 비로소 신자들의 본당 봉사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12월 1일, 상봉동 성당에서 전교회장으로 근무하던 남정자 스콜라스티카를 전교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상봉 25년사>에는 ‘초창기의 그 어려운 때 스콜라스티카 전교회장의 피나는 노력과 남다른 전교 수완으로 교세 확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적혀있다.

남 회장의 활동으로 비로소 본당에서 첫 예비자 입교식을 갖게 되었다. 이 때의 입교 예비자는 28명이었다.

1975년 12월 24일 본당에서는 첫 영세식이 있었다. 28명이 영세를 받았다. 이들은 상봉동 본당 공소 시절부터 교리를 받고 있던 신자들로 남 회장의 본당 임명과 함께 본당에서 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세례대장에서 확인>




묵동 성당 최초의 영세식 (1975. 12. 24, 28명)
중앙이 천요한 신부, 제일 좌측이 남정자 스콜라스티카 전교회장

 

초기의 사목 조직과 사제관 축성식

본당이 어느 정도 안정 되어 가자 천신부는 본당의 발전과 합리적인 사목 활동을 위하여 1976년 4월 5일 사목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조직하여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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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주도웅 베드로
회원; 김영진 율리오, 김진영 방지거, 신영철 노렌조, 권혁찬 돈보스코,
선우 중호 시몬, 윤재후 스테파노, 강후진 알벨도, 이찬영 토마스,
홍상현 토마스, 신원식 요왕, 조철연 아오스딩, 이재근 시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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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말부터 중화 2동과 성당 주변 구역 모임이 시작이 되었고 본당 구역 모임은 1976년 5월부터 매월 회합이 있었다.

1976년 7월 1일, 본당의 일반 사무를 위해 사무장 강일영 요아킴을 채용하였고, 1976년 5월 5일에는 본당에서의 첫 견진성사(142명)와 함께 강당 및 사제관 축성식이 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 집전으로 있었다.



묵동 성당 축성식 (1976. 5. 5)



묵동 성당 첫 번째 견진 성사 ( 1976. 5. 5 - 142명)



사목위원들과 김수환 추기경님



강일영 요아킴사무장 교구청 표창장 수상



성당 축성식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김수환 추기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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